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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는 482년경 다르다니아 타우레시움(오늘날 마케도니아)에서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비길라티나는 직업 군인인 유스티누스의 여동생이었다.
유능한 군인이었던 유스티누스는 큰 전공은 없었지만, 승승장구해서 황실 경비대 사령관이 되었다. 아들이 없었던 유스티누스는 유스티니아누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데려와 자신을 돕게 했고, 나중에 양자로 삼았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실 경비대에서 삼촌을 보좌한 것으로 추론되는데, 이때의 기록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518년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후사 없이 죽자, 유스티누스는 혼란을 틈타서 근위대를 장악해서 운좋게 황제가 되었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의 도움을 받았다. 황제가 된 유스티누스는 통치 능력이 없었기에 유스티니아누스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무지한 삼촌을 도와 여러 가지 행정 문제를 도맡아 처리했고, 나중에 노쇠한 황제를 대신하여 사실상 그 혼자 제국을 통치하다시피 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미천한 출신에도 학식이 뛰어나고 신중하고 적절한 판단으로 국정을 운영해 원로원 등의 신임을 샀다.
527년 4월 유스티누스는 조카를 공동 황제로 임명했고, 한 달 후 유스티누스가 서거하자 유스티니아누스가 단독 황제가 되었다.
테오도라 황후
황태자 시절, 그는 서커스 극단의 배우 출신인 테오도라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다. 테오도라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상당히 유명한 배우였다. 당시에 배우는 천하디천한 직업으로, 노예 또는 몹시 가난한 사람들이 종사하던 직업이었고, 여배우는 남자들한테 몸 파는 일을 겸하곤 했다.[7] 이 때문에 후대에 그녀의 삶은 “매음굴에서 자랐다.” “전에는 수치스러웠지만, 후에는 정숙하게 살았다.”라고 기록되었다.
테오도라 황후의 아버지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한 서커스단에서 곰을 돌보는 조련사였는데, 그녀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먹고살기 위해 어머니는 그녀를 서커스단 배우로 키웠다. 그러다 한 고관과 눈이 맞아 북아프리카로 가서 살림을 살다가 딸 하나를 낳고 버림받았다. 황태자인 유스티니아누스를 만난 것은 그녀 나이 스물다섯 살 때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온 직후였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나이는 마흔 살이었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결혼하기로 했다. 로마 사회를 뒤흔든 스캔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제국법에는 귀족은 평민과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로원 의원 신분인 유스티니아누스는 미천한 신분인 테오도라와 결혼할 수 없었다. 특히 황후이자 외숙모인 유페미아의 반대가 극심했다. 524년 유페미아가 세상을 떠나자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제인 삼촌을 사주해 귀족 신분도 낮은 계급과 결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후, 테오도라와 결혼할 수 있었다.[8]
525년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에 성공했다. 유스티니아누스 나이 마흔세 살, 테오도라의 나이 스물여덟 살이었다. 두 해 후인 527년,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제가 되었다. 황후(아우구스타)가 된 테오도라는 궁정 살림을 챙기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공동 통치자로서 활약했다. 그녀는 남편이 만든 법안에 공동 서명을 하고, 외교 사절을 접견했으며, 군대와 관리들을 통솔하는 등 제국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편견을 품었던 귀족들도 테오도라 황후의 훌륭한 처신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테오도라 황후는 평생 남편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도움으로써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테오도라는 결단력을 발휘해 그를 구했다.[9]